할 일 리스트라고 하면 뭔가 해야 할 것들을 빽빽하게 채우는 이미지가 떠오르잖아요
근데 어느 날 문득, 그 리스트를 일기처럼 써보기 시작했어요
단순히 업무 정리가 아니라
내 하루의 감정, 몸 상태, 작지만 소중한 순간들까지 담아내기 시작했죠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무거웠던 하루가 조금 가벼워졌고
체크하지 못한 날조차도 따뜻하게 기억되더라고요
체크 표시보다 더 중요한 건 마음의 정리
하루를 시작할 때, 우리는 늘 무언가를 해야만 해요
출근 준비, 미팅, 처리해야 할 업무, 통장 이체, 장 보기, 빨래 돌리기까지
작든 크든 해야 할 일들은 매일 쏟아지고
그걸 하나하나 머릿속으로 기억하는 것도 꽤 피곤한 일이죠
그래서 저는 어느 순간부터 ‘할 일 리스트’를 쓰기 시작했어요
근데 신기한 건, 처음엔 단순히 일정 정리를 위해 적었던 리스트가
나중엔 마치 일기처럼, 내 하루의 감정까지 정리하는 도구가 되어가더라고요
처음엔 “업무자료 정리하기, 오후 2시 회의, 저녁 장보기”
이런 식으로만 딱딱하게 적었는데
점점 “회의 전에 커피 한 잔 꼭 마시기”, “힘들면 잠깐 산책하기” 같은 말들이 들어가기 시작했어요
그냥 ‘일’이 아니라, 그걸 해내는 ‘내 마음 상태’를 같이 적는 느낌이었달까요
체크 표시를 하기 위한 리스트가 아니라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내가
어떤 기분인지,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어디쯤에서 멈추고 싶은지를 쓰는 공간이 된 거예요
그래서 가끔은 할 일을 다 못 했더라도 괜찮아졌어요
어차피 그 종이 위에는 ‘완벽한 하루’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남기는 거니까요
오늘도 무사히, 체크 하나가 주는 위로
리스트에 적힌 할 일을 하나씩 지워나가는 건 묘한 성취감을 줘요
특별히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빨래 개기’, ‘메일 확인하기’, ‘생수 주문하기’
이런 사소한 일들을 줄 긋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조금은 잘 살아진 기분이 들죠
그 체크 하나는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나, 오늘 이것도 해냈어”라는 말 같아요
특히 아무 일도 안 한 것 같고 무기력하게 느껴지는 날
리스트를 다시 들여다보면 의외로 꽤 많은 걸 했다는 걸 깨닫게 돼요
그리고 그건 생각보다 큰 위로가 되더라고요
저는 할 일을 쓸 때 항상 하루 중 가장 쉬운 일부터 적어요
“눈 뜨기”, “이불 개기”, “물 한 잔 마시기”
이런 거요
그걸 적고 체크해보면
나 스스로에게 “그래도 잘하고 있어”라는 말을 해주는 것 같아요
어떤 날은 하루 종일 하나도 못 지운 날도 있어요
근데 그 리스트를 다시 보면서
아, 오늘은 이걸 할 수 없을 만큼 힘들었구나,
내가 오늘 얼마나 지쳤는지, 감당할 게 많았는지를 되돌아보게 돼요
그래서 저는 체크가 없는 날도
그날을 기록해준 리스트 자체가 고맙다고 느껴요
그건 결국
내가 오늘도 어떻게든 하루를 살아냈다는 증거잖아요
해야 할 일보다, 살아낸 하루를 기록하는 마음으로
우리는 늘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 살아요
근데 모든 걸 다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할 일 리스트를 계속 써보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어요
할 일 리스트를 쓸 때
저는 마치 일기를 쓰듯 그날의 나를 적어봅니다
“기분이 좀 가라앉는다, 오늘은 조금 느릿느릿해도 괜찮다”
이런 말들을 조용히 한 줄씩 적어두기도 해요
그러면 리스트는 더 이상 부담이 아니라
‘하루를 나답게 채워가는 안내서’가 돼요
‘해야만 하는 일’로 가득 찬 목록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과 ‘마음이 원하는 일’도 함께 적어보면
리스트 자체가 훨씬 부드러워져요
“생각 정리할 시간 갖기”, “좋아하는 음악 틀기”, “일찍 눕기”
그런 것들도 분명히 하루를 더 좋게 만드는 중요한 할 일이니까요
때로는 ‘비워두는’ 할 일도 있어요
아무것도 적지 않은 칸을 하나 만들어두고
그 빈 공간에 마음을 쉬게 두는 거예요
그건 어떤 날엔
가장 나를 살리는 리스트가 되기도 해요
이런 식으로 매일을 기록하다 보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은 하루들이
조금씩 쌓이게 되고
그게 결국 내가 살아온 시간이라는 게 참 따뜻해요
어쩌면 할 일 리스트는
해야 할 일을 적는 게 아니라
나를 살피는 법을 배우는 기록장인지도 몰라요
그 위에 남은 건, 결국 내가 하루를 얼마나 진심으로 살아냈는지에 대한 흔적이니까요
매일 무언가를 해내야만 의미 있다고 느끼는 세상에서
가끔은 ‘살아낸 하루’를 조용히 기록하는 일도 참 소중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할 일을 다 하지 못해도 괜찮고
체크하지 못한 칸이 있어도 괜찮아요
내가 나를 살피고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위로가 되니까요
일기처럼 쓰는 할 일 리스트는
완벽한 계획표가 아니라
그날의 나를 다정하게 바라보는 방법이에요
하루 끝에 리스트를 다시 펼쳐볼 때
조금은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날도, 나도 참 잘해냈다고요 :)